옛 우리 조상들은 가을곡식이 바닥나고 봄보리가 영글지 않은 봄철 기근을 춘궁기라 하고 이때를 보내는 것이 참기 힘든 고개를 넘어가는 것과 같다 하여 “보릿고개” (맥령기)라 하였다.
이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풀이나 칡등의 뿌리를 캐서 죽을 쒀서 먹거나 소나무의 연한 속 껍질(송피)에 쌀가루를 섞어 삶아 먹는 초근 목피로 연명하고, 심지어 입자가 고운 흙에 나물을 섞어 쪄 먹는 등으로 심한 변비와 부황으로 고생하고, 이 마저 먹지 못해 아사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일제시대에는 쑥, 보리, 콩 등을 수탈해 가고는 짐승도 먹지 않는 콩깻묵(대두피)를 배급 주었고, 6·25전쟁 시에는 미군부대 잔반을 이용한 잡탕을 먹었는데 이를 유엔탕이라 하고, 돼지 사료에 비유하여 꿀꿀이 죽이라 하였으며, 이 당시 피난민들에게 주기 위해 군용 대형솥에 밥을 지어 배식 담당자가 부산에서 솥뚜껑을 열기 전에 “개판 5분 전이오!”라고 외치면, 굶주린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상황에 빗대어 무질서 하고 난잡한 상태를 “개판 오분전” 이라고 하게 되었다 한다.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배고픈 삶을 살게 된 것은 쌀, 보리 등 주곡의 생산량이 적은데다 가뭄, 홍수, 산지와의 교통 불편 등 여러 여건이 열악하기도 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역사상 931번의 작은 외침으로 인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고 수탈만 당하여 육지 사람들은 달래, 냉이, 씀바귀, 고사리 등 잡초를 나물이라고 먹었는데 그 종류가 무려 250여 가지가 넘었다 한다. 그러하여 “그 나물이 그 밥”이라는 말이 생겼고, 해안가 백성들은 미역, 다시마, 김, 해파리 등 바다 잡초를 먹었다. 또한 외침시에 먹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겨야 했기 때문에 발효 음식이 발달하기도 했다.
한편 먹는 것과 관련하여 일본 사람은 눈으로 먹고(모양 중시), 서양 사람은 코로 먹고(냄새 중시), 중국 사람은 입으로 먹고(맛 중시), 우리나라 사람은 배로 먹는다(양을 중시) 한다. 실제 조선시대 밥그릇 양은 700g 정도로 현대인의 공기밥 200g에 비하여 3배 이상이 많았고 통상 “밥심으로 산다”며 밥에만 의존했다. 이렇게 먹는게 절실했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진지 잡수셨어요?”, 친구 만나면 “밥 먹었어” 라고 인사하고 어른들은 “밥은 먹고 다니느냐”고 하였다. 이러다 보니 우리말 중에는 먹는 것과 연관된 것이 많은데 “애 먹었다, 말아 먹다, 욕먹다, 뇌물먹다, 감동먹다, 나이먹다, (축구) 골 먹다, (화투) 광먹다, (상대방에게) 맛좀 볼래, 한방 먹인다, 국물도 없다, 밥맛 없는 사람, 싱겁게 생겼다, 되게 짜다, 맛이 갔다, 엿먹이고, 골탕먹이고, 심지어 (사람을) 볶는다, 베껴 먹는다, 까먹는다” 등 수없이 많다. 이와 같은 습성은 요즘 젊은이들도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어, 씹었어?”라 하고 이메일 서버 앞에 붙이는 @ (엣)을 골뱅이라고 부른다.
또한 옛날 보릿고개 시대에는 구황 식품으로 시래기죽, 밀개떡, 곤드레밥, 쑥버무리, 풀대죽, 자운영죽, 꽃(진달래, 아카시아 등) 버무리, 뿌리 (연, 돼지감자, 토란 등)를 먹고 아이들은 삘기, 찔레 나무순, 잔대, 도라지, 곤충 등을 잡아 먹었다.
한편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가뭄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콩과 메밀 씨를 하사하기도 하였는데 백성들이 메밀 음식을 먹고 부황이 나자 메밀 음식과는 무우를 함께 먹도록 권장하였다. 특히 오천년 전부터 재배해온 콩은 5곡중 하나로 콩으로는 콩죽, 콩가루, 두부, 콩떡, 콩국수, 콩밥, 콩자반, 콩나물, 콩기름, 된장, 간장, 강정, 청국장등 콩은 볶거나 불리거나 삶아서 음식은 물론 장류나 발효 음식 등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이렇게 콩의 쓰임새가 많자 콩과 관련된 말도 많은데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불신의 극치), “콩 볶다 가마솥 깨트린다 (작은 일이 큰일을 저지를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원인과 결과는 같다), 콩 한쪽을 나누어 먹는다 (우애 강조)” 등이 있고, 세태를 풍자하는 “콩가루 집안, 콩 심어라 팥 심어라 한다, 콩국은 내가 먹고 설사는 남이 한다” 등이 있다. 다른 구황 작물인 고구마는 조선 영조 시대 (1763년) 조선 통신사 조엄이 일본 쓰시마 섬에서 구해다 부산 영도에서 처음 재배 했고 강원도 감자는 우장춘 박사가 1950년대 개발한 종자이고, 근래 유명해진 대형 옥수수는 1991년 최봉호 박사(전 충남대 교수)가 개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황 작물보다는 주식인 쌀 증산이 가난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동전 50원짜리 뒷면에 벼 나락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다수확종 통일벼이다. 통일벼는 1970년 육종학자 허문희 박사가 개발한 품종으로 기존의 벼 수확량보다 30% 이상 증수가 가능한 기적의 볍씨라 하였다. 그간 정부에서는 품종 개발과 함께 절미운동, 쌀 증산을 위한 퇴비증산, 혼식 장려, 쥐잡기 운동등을 민·관·군 합동으로 재건 운동, 새마을 운동 등 전국 조직을 활용하여 전개하였다.
이들 절미 운동은 연간 쌀 50만 석씩 절약을 목표로 혼·분식 장려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막걸리 제조시 쌀 사용을 금지 하고, 음식점에서는 매주 수·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쌀을 사용하지 않는 ‘무미일’을 지정하였으며, 각 가정에서는 부뚜막에 절미 항아리를 놓고 밥 할때마다 쌀 한 수저씩 넣었으며, 흰밥 판매 금지와 함께 잡곡 35% 혼밥을 의무화하고, 식당은 물론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사하였다.
한편 일선 행정 기관과 농촌 마을마다 쌀 증산을 위하여 소주밀식, 건답직파, 퇴비증산 운동을 경쟁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1970년초 정부에서는 전국에 쥐가 1억 마리쯤 서식하고, 이들 쥐가 연간 32만 톤의 양곡 (당시 전체 양곡의 약 8%)을 먹어 치운다고 추정하고 쥐약을 무료로 공급하여 “쥐 잡는 날”을 운영하는 등 쥐 박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심지어 학생들에게까지 쥐꼬리를 가져오라 하여 오징어 다리에 먹물이나 재를 발라가는 촌극도 발생 하였다.
이와 같이 정부에서는 절미 운동과 벼 증산 시책을 추진함에 있어 엄격한 평가와 함께 신상 필벌을 확실하게 실행했는데, 모범·우수자에게는 크게 시상하고, 신고를 장려하고, 위반자는 엄격히 처벌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한편, 지역·기관 간의 경쟁심을 높이기 위해 등수를 공표하는 등 성과를 높이기 위해 모든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한 결과로 1975년 쌀 자급 100%를 달성하고, 1977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쌀 생산량이 소비량을 초과(113%)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옛날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한다. 라면은 1960년대 이후 제2의 주식으로 인기가 높은데, 1961년 삼양 식품을 창설한 전중윤(당시 동방생명 부사장)이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긴 줄을 서서 꿀꿀이죽을 사는 것을 보고, 직접 사서 먹어보니 그 안에 깨진 단추며 담배 꽁초등, 이물질이 섞어 있는 것을 보고 미래 지향적인 보험업 보다는 우선 먹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하고 퇴직하였다. 그리고는 일본 출장시 먹었던 라면을 떠올리고 일본으로 가서 라면 생산 회사인 묘조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만나 기술을 전수 받았으나 라면 스프 제조 기술은 임원진의 반대로 얻지 못하고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오쿠이 사장이 보낸 비서로부터 봉투를 건네받아 비행기 안에서 개봉해 보니 그곳에 스프 제조 기술이 적혀 있었다.
그후 원주에 공장을 건립하고 1963년 9.15일 삼양라면을 처음 출시하였는데 당시 가격은 10원(꿀꿀이죽 5원, 커피 35원)이었다. 현재 원주시에서는 삼양라면 축제를, 구미에서는 농심라면 (롯데) 축제를 매년 개최한다.
이와 같이 보릿 고개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로, 이와 관련하여 옛 서산 출신 김씨 규수가 15세 나이로 당시 51세 연상인 영조 임금의 계비 (정순 왕후)가 된 사연 중에는 영조 임금이 간택 장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고?”라고 묻자 다른 규수들은 높은 고개의 이름을 댈 때 김씨 규수는 “보릿고개인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였기 때문이라 전해 오고 있다.
요즘에는 보릿고개 시절의 구황식품은 건강·토종 식품이 되었고 한때 힛트곡으로 “보릿고개”(진성 작사·노래)가 유행되기도 하였는데, “아이야, 뛰지 마라, 배꺼질라 , 가슴 시린 보릿 고개길, 주린 배잡고 물 한바가지로 배 채우던 그 시절 어찌 살았소, 초근목피 시절~~”가 보릿고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끝으로 아직도 무료 급식소가 전국에 207 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월급 고개”에 시달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필자는 하루속히 배고픈 설움이 없는 세상이 되길 바라면서, 작으나마 노인 맞춤형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것이 소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