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1990년 유엔 총회에서 10월 1일을 노인의 날로 제정하자, 우리 나라에서도 1997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피하여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정하였다. 노인세대는 인생의 여섯 단계에서 장년기 다음의 최종 단계로 노인연령은 정책에 따라 기준이 다르나 통상 1990년 이전에는 55세, 1990년대는 60세, 2000년대에는 65세로 정하였으며 202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20%로 최고령 사회에 진입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을 늙으신네, 어르신, 노인, 시니어, 실버등으로 호칭하는가 하면 노인네, 늙은이, 노친네, 노땅, 꼰대, 틀딱, 꼴통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이런 노인들 중 유독 80대 노인 (1936년에서 1945년 사이 출생자, 전체 인구의 약 4.4%인 226만 5천여 명)은 가장 기구한 시기에 태어난 세대로 봉건사회나 근대 사회의 잔재속에 첨단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억세게 운좋은 (?) 세대이기도 하다.
즉 80대들은 일제강점기에 나라 없는 처지로 태어나 8.15 광복을 맞아 난민 신세는 면했으나 6.25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되고 천만 이산 가족의 아픔을 겪었으며 4.19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5.16혁명 이후 새마을 운동과 조국 근대화, 산업(수출) 역군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들이다.
이른바 80년대는 쌍둥이도 세대차를 느낀 다는데 하물며 강산이 8번 변하는 시대를 살아왔기에 독특한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즉 80대는 “검정 고무신” 세대로 책보를 어깨에 메고 학교에 가서 연필심에 침을 발라 꾹꾹 눌러쓰고 연필 깍지를 쓰던 몽당연필 세대이다.
당시 많이쓰던 동아연필은 1946년 김정우씨가 적산 기업인 대동아 연필을 불하 받아 대전에 설립하여 큰아들 김춘경 (심우정 전 검찰 청장의 장인)이 경영하였고, 그의 호인 우송을 딴 우송중, 고교와 우송 대학이 있다.
한편 지우개 달린 연필은 1858년 미국의 하이멘 립먼의 특허품으로 그는 화가 지망생으로 뎃생을 할때 자주 수정하기 편리하게 연필에 실로 꿴 지우개를 매달아 사용하였으나 불편을 느껴 오던중 그가 외출하기 위에 모자를 쓰고 거울을 보다 힌트를 얻어 연필위에 모자를 씌우듯 고무를 고정시켜 특허를 냈다 한다.
또한 80대는 보릿고개 세대로 형제간 누룽지, 누름밥 싸움을 하고 소풍갈때나 겨우 사먹던 눈깔 사탕을 돌아가면서 빨아 먹고 껌은 씹다가 잘때는 벽에다 붙혀 놓았다가 이튿날 다시 씹고 여름에는 우물물에 삭가린, 당원, 뉴슈가를 타서 벌떡 벌떡 마셨으며 아침에는 동네 앞 또랑에 가서 비누 없이 세수하고 고운 모래로 양치하며 자랐다.
그리고 80대들은 어릴때 얼굴에는 마름버즘, 머리에는 기계충, 여름에는 학질, 땀띠, 겨울에는 감기, 동상, 그외 홍역, 종기, 배알이등 이런 저런 병을 앓았으나 약이라고는 익모초, 된장, 금계랍, 아까징기, 고약등이 고작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고약은 1895년 충남 아산 공세리 성당에 부임한 에밀드 브즈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운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는데 그때 신부님을 도와 일하던 이명래씨가 전수 받아 1906년 전통의학 1호로 등록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용하게도 1950년 평균 수명이 47.9세였으나 지금은 83.6세로 세계 상위의 장수국에 살면서 건강 검진 독촉 안내문을 받고 귀찮아 하는 세대이다.
한편 80대는 원조 밀가루 포대나 무명에 검정 물감을 들여서 바지만 입고 다니던 마지막 노팬티 세대이다. 그러나 “나이론”이라는 폭발적 인기가 있던 옷을 입기도 했는데 나이론은 1983년부터 수입되어 가볍고 세탁하기 좋아 한때 인기가 높았다. 당시 필자의 학우중에 자기 몸에 있는것은 모두 나이론이라고 자랑하여 그 친구 별명이 평생 나이론이었다. 나이론은 “가짜”의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는 나이론이 피부에 좋지 않는등 단점이 드러나자 겉은 그럴듯 하나 속은 가짜라는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80대는 “농자 천하지 대본”을 “기업인 천하지 대본”으로 바꾸고 “사농 공상의” 신분 서열도 뒤집은 세대인데 여기에는 “삼순이” 가 있었다. 즉 식순이 (식모), 공순이 (여공), 차순이 (여차장) 들이다. 1967년 구로공단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여공들이 “평생 소원이 또래처럼 교복 한번 입어 보는 것이다”라고 하여 산업체 부설 학교가 생겼다.
그리고 80대들은 못배운 한이 많았는데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하는것에 빗대여 우골탑 (소판돈으로 세웠다는뜻) 이라 할 정도로 높은 교육열속에 각계의 문맹퇴치 활동과 정부의 의무 교육 (국민학교 1950년, 중학교 1984년 시행) 정책등으로 1945년 문맹률이 78%였으나 지금은 0%대로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80대는 어릴적 머리를 잘드는 칼로 백구를 치고 행상 이발사의 양손 기계로 머리를 깎으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으나 1970년대에는 장발 유행을 따르다가 경찰 단속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잘리면서 또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당시 “왜 불러”라는 노래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경찰이 단속하기 위하여 부르는것을 비꼰다 하여 금지곡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대들은 아이 낳으면 먼저 시계있는 집에 가서 시간을 물어 보는 어른들을 보고 자랐으며 오보 사이렌과 야간 통행 금지 싸이렌 (1982년 폐지) 소리에 익숙한 세대 이기도 하다.
한편 80대는 자동차 운전 면허 취득 (1961년 시행) 첫세대로 집집마다 지게가 있던 자리에는 자가용차가 주차하고 이제는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는 첫세대로 교통 천국에 살고 있다. 필자는 1961년 서울 갈때 아침에 공주에서 당시 처음 생긴 신영 직행 버스를 타고 수원가서 점심 먹고 용산 종점에서 하차하여 돈암동 하숙집에 가서 저녁을 먹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대전에서 아침먹고 서울가서 점심먹고 부산에 가서 저녁먹고 대전집에 와서 잠을 자는 전국 일일 생활권에 살고 있다.
그리고 80대들은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다니는 첫세대로 우표에 침발라 편지 봉투에 붙이고 공중 전화 앞에 줄서고, 전보치던 마지막 세대로 지금은 안방에서 해외 친척들과 영상 통화하는 세대들이다.
이렇게 80대는 1960년 1인당 국민 총소득이 143만원에 불과한 극빈 생활을 하다 지금은 무려 4,381만원이나 되는 세계 상위권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한편 80대들은 그간 일가 친척이 모여 벌초하고 명절마다 온 가족이 모여 제사 지낸후 함께 성묘하던 마지막 세대이며 회갑연을 포기한 첫 세대이고 시집살이 마지막 세대로 며느리 눈치보는 첫 세대로 더러는 아들 며느리의 고급 승용차에 실려 요양원에 가서 명절이 되면 요양원 진입로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요양원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80대는 산전수전, 지상전, 공중전을 다 겪고 온탕 냉탕 극과 극을 오간 신기한 (?) 세대들이다.
끝으로 “노년 예찬”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실제로 노인되어 살다보니 고급옷보다 편한 옷이 좋고, 고급 요리 보다 토종 음식이 좋고, 고급 침대보다 등 따스운게 좋고, 앞서 가기 보다는 조금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편하다. 이제 세상사 모든 일들은 그간 다 겪은 일이고 보고 듣던 일이라서 결과가 빤히 보여서 마음 둘일 없다. 그저 그대로 받아 들이면 편안함이 넘치는 시기다”. 우리 80대 벗들이여! 勞人과 努人되어 路人이 되거나 “NO人” 소리는 듣지 맙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