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뉴스 독자 투고 (제 61호): 제 1회 “세종 대왕 나신 날” 국가 기념일을 맞아 세종의 애민, 자주, 실용 정신에 따른 각 분야 위업을 살려 보고자 합니다.

2025년 5월 15일은 제 1회 “세종 대왕 나신 날” 기념일이다.  정부에서는 작년 11월 29일 세종 대왕이 나신 5월 15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10월 9일은 “한글날”로 국경일이고 겨레의 스승으로 꼽히는 세종이 태어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세종은 1397년 5월 15일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 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21세 즉위하여 33년간 재위하다 1450년 2월 17일 54세로 승하하여 경기 여주시 세종 대왕면 왕대리 소재 영릉에 모셔져 있다.

세종 대왕은 법제, 음악, 지리학, 천문학, 군사학, 기공학, 농학, 의학등 모든 분야를 발전시키고 특히 복지, 인권, 자주 의식을 함양시켰으며 심지어 대마도 정벌등 국토를 넓힌 성군으로 우리나라 5천년 역사속에 광개토 대왕에 이어 두번째 “대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업적은 1443년 10월 9일 반포한 한글이다.  세종은 당시 조정 대신과 중국의 압력으로 감히 새로운 글자를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장영실등 천민 출신 학자들과 극비 프로젝트로 추진하였는데 장영실로 하여금 사체 해부를 통해 인체의 발음 기관 모양을 제작하도록 하여 이를 본떠 자음을 만들고 모음은 천(.), 지 (ㅡ), 인 (ㅣ) 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한글은 철학 (천지인), 과학 (기호가 아닌 체계문자), 언어학 (발음기관 모형과 소리 흐름을 기반)이 융합된 최고의 문자로 예술성 (직선과 곡선의 조화, 글꼴의 아름다움등)이 탁월하고 자음, 모음 24개로 총 11,172자나 만들수 있어 모든 소리 (8, 810여개)를 표현 (중국어는 400여개, 일본어는 300 여개) 할수 있는 음성 공학적 문자이다.  또한 한글은 하나의 자판에 모든 문자를 입력 할 수 있어 중국, 일본어 보다 입력 속도가 7배나 빠르다.

한글은 당초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워 쓰고 읽을 수 있는 글자로 창제 되었으나 600 여년이 지난 후 디지털 시대를 맞아 IT산업의 강자가 되었으며 최근 AI시대를 맞아 기계와 인간과의 소통에 최적의 문자로 부상하면서 4차 산업 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일주일 정도면 한글을 배울수 있어 일본 등 각국의 Z세대들의 스마트 폰에는 한글 키워드가 있고 자국어를 한글로 암호로 쓰고 일기도 쓴다 한다.  이와 관련 세계 언어 학자들은 현 지구상 6,912종의 언어 중 2050년 경에는 거의 사라지고 영어와 한국어등 5개 언어 (알파벳과 한글) 정도만 살아 남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한편 세종은 “노비는 비록 천민이지만 다같이 하늘에서 내린 백성이다”라며 노비와 죄인, 노인과 어린 아이들에 대한 인권과 복지에 각별하였는데 사형수에 대해서는 지금의 삼심제에 해당하는 “금부 삼복법”을 제정하여 처음에는 시골 원님이 재판하고 다음에는 관찰사가, 마지막은 형조에서 왕이 직접 판결 하였다.

그리고 어린 아이와 노인이 죄를 범했을 경우 얼굴등에 표시하는 “자자형”을 금지하고 더위가 심하면 경범죄수는 모두 석방토록 하고 남은 죄수들에게는 4월부터 8월까지는 냉수를 지급하고 5월부터 7월까지는 목욕 시간을 배정하며 10월 부터는 옥안에 짚을 두텁게 넣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젖먹이가 있는 여죄수는 귀휴케 하고 죄수의 어린아이는 관아에서 부양자를 지정토록 하였다.  또한 여자 노비 (관비)에게는 1,000일의 출산 휴가를 주고 그 남편도 산후 1개월을 쉬게 하였으며 천민을 포함한 80세 이상 노인들을 궁궐에 초청하여 “양로연”을 자주 베풀고 100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쌀 (10석)과 옷감을 주도록 하였다.

또한 세종은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정간보”를 발행했는데 이는 우물 정자 (#)와 같은 네모칸에 리듬을 표시한 기보법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음길이, 음높이를 음표와 쉼표로 정량적으로 약호(code)화 하고 연주법, 노래말, 기타요소를 적어 놓았다.  또한 종묘 제례악과 여민락등을 직접 작곡하였는데 이는 동서 고금을 통하여 군왕으로써는 최초의 작곡가였고 (18세기에 독일의 프리드 대왕과 오스만 제국의 셈림 3세 등장) 또한 음악을 연주시 주장 막대로 박자를 맞추었는데 이는 서양 바르크 음악에서 처음 지휘봉을 사용했던 장바티스트 륄리보다 200년이나 앞선다.

또한 세종은 국방에도 공이 큰데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에 4군 6진을 세워 여진족의 침범을 막고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개발한 병기 공학은 현대 무기와 부대 운영에 근간이 되었다.  세종은 “총통 등록”을 저술하여 화약 무기체계를 표준화 규격화 시켜 근대 포병이라는 병종을 탄생 시켰으며 “매화법”등 지뢰 매설 요령을 개발했고 당시 “신기전”은 고체 로켓 추진식 병기로 일종의 다연장 로켓 야전포로 발전 시켰다.

그리고 조선의 특수 부대 (정보, 첩보 수집)인 “체담 정군”을 창설하여 여진족의 동태를 파악하거나 국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 조사 처리 하였는데 평안도에 주둔한 체담 정군의 체담인은 400여명이나 되었다 한다.

한편 세종은 농업 발전을 위하여 “농사 직설”을 편찬하고 농지 개혁을 위하여 당시 경지 면적을 조사하였는데 그 면적 (160만 헥타)은 1918년 일제시 조사한 토지 면적과 유사할 정도로 정확하였으며 당시 농민들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농지세에 대한 불만의 상소가 많자 조정 회의와 설문 조사 (17만 농가), 주민 투표등을 통하여 법을 만들어 시범 지역에 적용하는등 민주적으로 신중히 검토하여 무려 13년만에 전분 6등법 (토지의 비옥도)과 연분 9등법 (기후, 풍흉에 따른 차등)등 토지 공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순지라는 천문학자로 하여금 “교식 추보법”을 발간토록 하여 일식과 월식을 미리 계산케 하는등으로 지동설을 증명 (서양보다 200여년 앞선 학설임)하고 당시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게 하였다.

한편 거리 측정을 위해 “기리 고거”라는 수레를 만들었는데 바퀴 둘레가 16척 (대략 5 미터)되도록 하여 100 바퀴 굴러가면 그 위에 매단 북이 “뚱”하고 치며 그 북소리가 10번 치면 그 위에 있는 종이 “땡”하고 치어 5킬로 미터 (당시 10리)를 알렸다. 세종이 피부병으로 온양 온천 나들이때 이 수레와 동행했고 김정호가 대동 여지도를 만들때도 이 수레를 이용했다 한다.

그외 혼천의 (천체 관측기), 측우기 (강우량 측정) 시계 역할을 하는 앙부 일구, 자격루, 옥루등을 발명하였으며 특히 백성들의 건강을 위하여 동양 최대 의학 백과 사전인 “의방 유치” (총 365권)를 편찬하고 “세종 실록 지리지” (8도 334개 고을의 연역, 호구, 역, 봉수등 현황 기록)를 제작 하였다.

이렇게 우리나라 역대 왕 중 업적이 많고 인지도가 높은 세종이기 때문에 세종 이름을 딴 세종로, 세종 대학교, 세종 텔레콤, 세종 과학 기지, 세종 대왕 함 (한국 최초 이즈스함)등 세종의 이름이 많은데 인천 국제 공항도 세종 국제 공항으로 명명하려다 인천 시민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고 세종시는 지명을 공모하여 세종시가 되었다.

그리고 세종은 새해가 되면 제일 먼저 열매를 맺는 앵두 나무를 무척 좋아했는데 세종의 아들 문종은 세자 시절 아버지가 좋아하는 앵두 나무를 궁궐에 많이 심어 경복궁을 앵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세종 대왕 유적 관리소에서는 지난 4월 12일 여주 영릉에서 가족 단위 앵두 나무 심기 행사를 개최하여 어린 아이들에게 세종의 위업을 기리도록 하였다. 

do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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