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뉴스 독자투고 (제 59호): 옛날부터 우리삶의 애환이 깃든 “장날”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장날의 유래는 조선 초기부터 상업을 국가 통제하에 두고 서울 육의전과 지방의 시전(시장)은 모두 관아의 허가에 의하여 개장되고 개인이 사사로이 거래하는 이른바 난전을 금지하는 등 상권을 관아에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791년 시전 상인의 특권을 일반인에게 허용하는 “신해 통공”에 의하여 해제되었다.  이로 인해 1808년 “만기 요람”에 의하면 전국에 시전이 1,057군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장날은 보름, 열흘, 닷새, 사흘등 지역에 따라 장서는 날이 일정치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들면서 5일장이 일반화 되었다. 그리고 장은 일어나는 것을 연상케 하는 “서다”라고 하고 오전장을 초장, 오후장을 파장이라 한다.  장에서 사돈 (딸의 시아버지)을 만나 인사하면 엉뚱하게도 “초장에 무슨 갯국 (보신탕)을 유~”라고 하면 할수 없이 개장국과 막걸리를 대접하고 저녁때 또 사돈을 만나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하면 못들은 척 하면서 “파장에 무슨 엿을 유~”하면 또 엿을 사주었다는 대화에서도 알수 있다. 

그리고 장날에는 일반 물건을 사고 파는 “장꾼”과 전문적으로 장터를 돌아 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 (봇짐 장수, 등짐 장수)인 “장똘뱅이”, 장터에 일없이 나온 “맥장꾼” 철 지난 헌 건물을 싸게 파는 “마병 장수”, 고기 꾸러미를 들고 이곳 저곳으로 팔고 다니는 “꾸미 장수”, 만병 통치라고 약을 파는 “약 장수”(품마, 사당패등), 장기, 윷, 화투등으로 눈속임하여 돈을 갈취하는 “야바위 꾼”, 소전 옆 술집 골방의 “투전꾼”, 물건 흥정을 돕는 “거간꾼”, 사주와 점을 치는 “점쟁이”등 온갖 꾼들이 모인 장터는 그야말로 눈요기 거리도 많아 “장에 간다”고 하지 않고 “장보러 간다”했다.

또한 장터에는 농사꾼끼리 서로 팔고사는 “장터 거리”와 장사꾼이 자리잡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전” (전포)이 있고 시전은 쌀을 파는 싸전, 입성 (옷, 옷감)을 파는 베전, 포목전, 어물전, 곡물전, 떡전, 옹기전, 고기전 (육간), 나무전, 숱전, 잡화전, 피전 (가죽), 제수전, 쇠(소)전, 닭전, 소쿠리전, 채소전, 약전등이 나뉘어져 있고 이곳은 흥정과 호객 소리로 하루종일 시끌 벅적 하였다.

이러한 장날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오는 과정에서 얽힌 사연과 속담도 많다. 먼저 너나 없이 장에 가는것을 가르켜 “남이 장에 간다니 씨 오쟁이(씨앗을 담아두는 짚으로 만든 자루) 떼어 가지고 간다”, “남이 장에 간다니 거름(두엄)지게 지고 간다”고 했는데 이는 덩달아 따라 할때 쓰는 속담이다.

다음 “뜬금 없다”는 말로 이는 갑작스럽고 엉뚱하다는 뜻으로 그 유래는 물건을 흥정할때 금(값)을 밀고 당기는데 대부분 파는 쪽에서 금을 내고 사는 쪽에서 에누리 하거나 덤을 요구하여 거래가 성사되지만 싸전이나 소전등 값진 물건을 거래하는 곳에서는 거간꾼 (주로 장똘뱅이)이 금을 띄운다.  그렇게 금을 띄워 놓는것 (가격을 정하는)을 “뜬금”이라 하는데 그 뜬금이 없을때 혼자 자기 마음대로 마무리하려 들때 “뜬금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장날로 인하여 “밤새 별일 없었지요”라는 아침 인사가 생겼는데 이는 장날에 오랜만에 만난 사돈끼리 술한잔 나누다 그만 취하여 집에 갈때 소를 바꾸어 탔는데 소들은 주인이 바뀐줄도 모르고 평소 습관대로 자기 집에 갔고 술취한 두 사돈은 안방에 들어가 아내옆에 누어자다 새벽에 갈증이 나서 깨어보니 안사돈이 옆에 누어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뛰어나와 마을밖 삼거리에서 마주친 두 사돈은 이구동성으로 “밤새 별일 없었지요”라고 인사를 한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당시 장날로 인해 사단도 많았는데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기생집에 가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맛바람 피우러)…” 하는 동요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의 상황을 맞을때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 속담은 “모처럼 친구집에 갔는데 그날이 친구 생일이라서 잘먹고 왔다”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반대로 “하필 마누라 때린날 장모가 왔다”는 불운한 상황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외 “여자는 장날을 몰라야 팔자가 좋다”(바깥 세상일은 알것 없이 집안에서 알뜰이 살림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뜻), “장마다 꼴뚜기 날까” (장날마다 꼴뚜기가 나오는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 “파장에 수수 엿장수” (기회를 놓쳐서 별볼일 없게된 상황), “갓쓰다 장파한다”(미리 준비하지 않아 낭패 볼때)등 수없이 많다.

또한 장은 대목장 (설, 추석등 명절전 장날)과 백중장이 가장 성대했는데 명절때면 동리 아이들은 달걀 꾸러미와 쌀등을 가지고 고무신 사러 대목장에 가신 어머니를 동구밖까지 마중나갔고 백중날 (음력 7월 보름)즈음 장날은 온동네 일꾼과 머슴들이 주인한테 백중돈을 타가지고 장에가서 물건도 사고 음식도 사먹고 놀이도 즐겼다.  한편 필자는 70여년전에 읍내 중학교에 입학하여 하숙을 하였는데 장날이면 고향 사람들이 보고 싶어 고향가는 길목에 나가 있곤 하였는데 그때 땔나무를 팔고 빈 지게뿔에 생명태 한코를 매달고 가는 아저씨며 송아지를 사서 앞뒤에서 끌고 몰고하는 부부며 머리에 봇짐을 이고 손에는 양잿물 봉지끈을 들고가는 아주머니등 다양한 파장꾼을 구경하는 중에 옆집 아저씨의 구루마와 함께 뗴지어 가는 동리 사람들을 만나면 더러는 장바구니에서 주전부리 꺼리를 꺼내 주시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이런 장은 물건을 사고하는 상행위 이외 장꾼들이 전하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며 근처의 대소사등을 듣고 맛선과 중매의 장소가 되기도 하며 친척과 친정의 안부도 알아보고 때로는 민중이 저항하는 곳이기도 하는등 그야말로 장날은 먹고, 듣고, 보고, 즐기는 우리의 삶과 애환을 함께 한곳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이요 소통의 장이요 우리 공동체의 모습으로 값진 전통 문화 유산이다.

끝으로 올봄에는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 장터에 가서 전통 음식도 먹고 섬진강변의 벗꽃도 구경하고 가을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장 (매달 2, 7일)에 가서 메밀꽃 축제도 구경하고 깡통 열차를 타고 효석 문화제를 한바퀴 돌아 보는등 장똘뱅이가 되어 전국 유명장을 돌아 볼까하는 뜬금 없는 생각이 듭니다.

dokja

지난 기사

Breaking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