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뉴스 독자 투고 (제 48호): 그 옛날 송진을 공출하고 학교 난로 땔감으로 솔방울을 가져가고 송충이 잡고 풀씨 채취하고 사방공사 노역하여 밀가루 배급받던 그 시절을 아시나요. 이번호에서는 우리나라 민둥산의 산림녹화와 관련된 내용을 교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24년 4월5일은 제 79회 식목일입니다.  식목일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설이 있는데 우선 기원전부터 청명과 한식날에 산소에 가서 나무를 심던때가 4월 5일경이었고 676년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념하여 나무를 심은 날이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며 조선 성종 임금이 1493년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친히 밭을 갈고 나무를 심던 “친경일”이 양력으로 4월 5일인데 이 행사는 1910년 순종 황제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후 1911년 일제 총독부가 4월 3일을 식목일로 지정하였으나 1946년 미군정청이 4월 5일로 변경하였으며 1948년 이승만 정부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제정한데 이어 이듬해 법정 공휴일로 지정 (2006년 폐지)하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을 사방의 날로 제정하면서 식목일도 3월 15일로 하였으나 1961년 다시 4월 5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 최초의 식목 행사는 미국 네브라스카 주에 이주한 개척민들이 산림이 헐벗은 것을 보고 산림 녹화를 위해 전체 주민이 하루를 나무 심는데 봉사하자는 J.S. 모던의 제창에 호응하여 1872년 4월 10일에 제 1회 식목 행사를 하였으며 그 후 J. S 모던의 생일인 3월 22일을 Arbor Day (나무의 날)로 정한것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과 세계적으로 확산 되었으며 UN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은 3월 21일입니다.

한편 전문가들에 의하면 나무(숲)는 물을 정화하고 저장하는 녹색 댐 기능과 공기 정화, 기후 조절, 생활 물자 공급, 생물에게 서식처 제공, 토지의 침식과 유실 방지, 방풍과 피서지 및 심신 수양 장소 제공등의 환경 보호와 생태계 보존, 자연 재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여 인간, 자연, 생물에게 꼭 필요한 자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나무를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연료로 사용해 오던 중 일제시대에는 군수 물자 보급을 위해 원시림이 벌목 되었고 송진까지 공출시켜 소나무가 수난을 당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사회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벌목과 장작 및 숯감으로 잘려 나갔고 산간오지에는 화전민이 늘어났으며 농촌의 유일한 돈벌이로 나무 장사가 성행 했는데 필자가 살던 공주 장날이면 제민천가에 나무짐이 즐비 하였으며 학교 난로 땔감으로 솔방울을 가져 가는등 나무잎과 뿌리 (고주배기)는 물론 나무씨까지도 훼손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전국토의 65%가 산인데 이중 50%가 민둥산이 되어 비가 조금만 와도 산사태와 홍수 및 침수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당시 외국인은 “한국에는 두가지 색깔이 있는데 그것은 흰옷과 붉은 산이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민둥산이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식목과 육림, 사방과치산, 연료 대체, 벌목 단속등 산림 녹화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때 사방 산업에 동원되는 사람에게는 밀가루를 지급하였는데 춘궁기 생계유지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나무씨와 풀씨를 가져오도록 하였고 식목 방학을 하고 나무를 해치는 송충이 잡기에 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산림 녹화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한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1960년대라 하겠습니다.  박대통령은 1960년대초 월드뱅크에서 후진국 환경보호 자금을 유치하여 먼저 시멘트 공장을 건설한 다음에 석탄 광산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러자 월드 뱅크측에서는 왜 나무를 심지 않고 딴짓을 하느냐고 항의했으나 “지금은 나무를 심으면 나무가 크기도 전에 땔감으로 쓰이므로 먼저 주거 연료를 나무가 아닌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하고 양옥식으로 주거 환경을 개량하고 연탄으로 난방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산림법을 제정하고 임산물 단속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도벌을 5 대 사회악으로 정하고 단속하였습니다.  당시 조랑말을 타고 벌목을 감시 하는가 하면 산감들이 각 가정의 장작등을 적발하였는데 당시 시골에서 제일 무서워 했던 사람이 산감 (산림 감독)과 밀주 단속원 (세무서)이었습니다.  또한 사방 사업법을 제정하여 최초로 항공 사진에 의한 조림 사업을 하고 군 미필자 등에게 녹화 사업에 의무적으로 부역토록 하고 사방 관리소를 사방 사업소로 확대 개편하는가 하면 농림부 산림국을 산림청으로 승격시켜 읍, 면, 동까지 장악 기능에 있는 내무부로 이관하는 등 조직도 개편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 화전민 실태조사 (당시 13만 6천호)를 하여 이주 사업을 하고 국립공원 (1967년)과 그린벨트 (1971년)를 지정하는 등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새마을 사업과 연계시켜 붉은산 없애기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식목율과 묘목 생존율을 시 도간 교차 감사로 검목케 하여 상벌을 엄히 하고 경쟁심을 유발함에 따라 돌산에서는 허리에 밧줄을 묶고 나무 심기를 하는등으로 후진국의 나무 생존율은 10%이었으나 우리나라는 100% 활착하였는데 1982년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2차 대전 이후 산림 녹화가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산림 녹화 산업의 집념은 1964년 독일 방문이 분수령이었습니다.  독일은 패전 후 먹을것도 입을것도 없이 엄청난 전쟁 배상금만 늘어났던 때에 추위가 혹독하게 몰아쳤으나 연료가 없자 독일 정부에서는 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때라고 방송하였으나 독일 국민들은 옷을 껴입고 식구끼리 부둥켜 안고 자다가 새벽에는 식구끼리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추위를 이겨내고 그 누구도 산으로 들어가지 않음으로 해서 “검은 숲” (Black Forest Schwarz Wald)을 이뤘고 전후 20년 만에 나일강의 기적을 이루어 채권국이 된 사실을 알고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산이 녹화되기 전에는 다시는 유럽땅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73년 산림 녹화 10개년 계획 (1973-1983)에 이어 작년에는 산림녹화 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제는 완전 산림 녹화를 이룬데 이어 2050 탄소 중립 (Net Zero)을 향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안병욱 (1920-2013년) 교수가 제창한 녹색 혁명과 민족 상록수, 그리고 삼식 주의를 소개하겠습니다.

녹색혁명은 푸른산을 만들고 푸른 인물을 만들고 푸른 정신을 만들자는 것이요, 상록수 운동은 푸른 나무는 자연의 상록수요, 푸른 사람은 인간의 상록수요. 푸른마음은 정신의 상록수라 했습니다.  그리고 삼식주의는 나라에 심어야 할 세가지를 지적하였는데 그 하나는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나라에 젊은 일꾼을 심어야 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우리의 정신속에 이상을 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do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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