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며 금년은 6.25 전쟁 71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조국 분단과 동족 상잔의 6.25 전쟁과 관련하여 교민들과 단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38도선을 남북이 각각 3회씩 넘나들면서 전 국토의 80%에서 전투를 벌이다 1953년 7월 27일 만 3년 1개월 2일만에 전투를 끝내고 휴전하였습니다.
이 3년간의 전투로 인명 피해만 한국군 13만 8,000여명이 사망하고, 부상 45만여명, 실종 2만여명이 발생하였으며, 민간인도 24만 5,000여명이 사망하고, 실종 30만 3,000여명, 부상 23만 여명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에 의하여 민간인 12만여명이 학살되고 10만여명이 북한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이로인해 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하고 전 국토는 폐허가 되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전쟁을 겪은 정부에서는 1956년 호국 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 선열 밎 전몰 장병의 위혼을 추모하고자 현충일을 제정하였습니다.
6월 6일이 현충일이 된 배경은 옛날 고려시대부터 청명과 한식일에 성묘를 하고 보리가 익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망종 (6월6일)에 제사를 지내던 전통에 기인한 것이라 합니다. 그후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날에는 가무를 삼가하고 추모와 호국정신을 기리는 플랜카드를 게시하며 검은 리본을 패용하고 집집마다 조기게양등을 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다만 관계자들의 현충일 참배와 10시 싸이렌에 맞추어 묵념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호국의 달 6월 중에는 호국 보훈 행사나 월요일 애국 조회시 “6.25의 노래”를 불렀으나 1998넌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행사가 사라지기 시작하여 “6.25의 노래”를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부를 기회가 없어진데다 김대중 추모시를 지었던 심재방의 개사시가 나오면서 사실상 금지곡 상태로 외면받게 되고 말았답니다.
# “6.25의 노래”와 개사시의 첫 구절만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6.25의 노래: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개사곡:심재방 작사)-“…조국의 산하가 두동강 나던 날을…” (후렴): “이제야 이루리 그날의 숙원을…”
그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는 1968년에 제정된 후 1972년 1차 개정에 이어 2007년 7월에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개정되었습니다.
한편 반공정신 고취와 교육 방향을 담은 “국민 교육 헌장” (1968넌 12월 5일 반포)은 각종 암송대회와 시험문제로 출제되는 등 중요시 되었으나 2003년 국민교육 헌장은 물론 헌장선포 기념일이 폐기되고 교과서와 각종 식순에서도 완전 삭제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공 교육과 반공 사상 고취를 주도했던 “반공 연맹”은 그간 반공 웅변대회, 글짓기, 반공교육, 안보견학, 보훈활동, 해외 여행자 대상 반공 소양교육 (필증 소지시 여권 신청 가능)등을 실시해 왔으나 “자유총 연맹”으로 개명된 후 그간의 활동은 크게 변했습니다.
이상 살펴 본것은 교민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지엽적인 것만 언급했을 뿐이며, 그간 6.25세대들이 쓰던 북진통일, 멸공, 괴뢰군, 인민군등의 용어는 사라진지 오래고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가 논쟁이 되고 있답니다.
끝으로 저는 북한의 대남 전략인 “무력 통일과 남조선 적하통일”은 변함이 없고, 월남패망에서 보듯 나라 없이는 모든것을 다 잃는 다는 것과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현재도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들이 전후방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것을 위정자는 물론 온 국민들은 명심하길 당부하면서 이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