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순수한 우리말로 미틈달 (미트다는 밀치다는 방언으로 가을을 밀치고 겨울로 들이 닥치는 달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11월은 정녕 매력없는 달일까요, 꽃도 시들고 나뭇잎도 떨어지는 썰렁한 달, 가을도 겨울도 아닌 색깔없는 달로 스산하여 움츠리고 멈추는 달이라 하는가 하면, 11월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가슴을 덥히고 추수 감사절이 마음을 채워주며 유유자적한 여유와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고 그저 맹물처럼 순수한 달이라는 예찬도 있습니다.
즉 11월은 10월처럼 곡식을 거두거나 들로 산으로 나다니거나 볼꺼리 찾아 헤메일 필요도 없고, 12월처럼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면서 한해를 결산한다거나, 연하장을 보낼 일도 없이 그저 조용히 여유를 만끽하며 지낼수 있는 달이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용한 공간에서 고요하게 휴식할줄 모르는데서 온다”고 하였는데 이는 일년 내내 여유를 모르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이런면에서 여유와 사색을 담을수 있는 11월이 있다는것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한편 11월의 11은 “길”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길”은 우리가 정말 자주쓰는 말입니다. “길”을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신라 향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으며 순수한 우리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길”을 칭하는 말들도 거개가 우리말입니다.
한편 “길”을 어릴때는 발로 걷고 젊어서는 마음으로 걷고 늙어서는 머리로 걷느다는 말이 있듯이 “길”이란 그 단어 자체만으로 실용적이고 문학적이고 철학적 (사유적)이라 합니다.
이러한 “길”과 관련해서 실용적 측면에서의 길의 종류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길” 이름에는 질러가거나 넓은 길보다는 돌아가거나 좁고 험한길에 붙이는 이름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 인생사처럼 말입니다. 즉, 집 뒷면의 뒤안길,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 꼬불꼬불한 논 위로난 논틀길, 거칠고 잡풀이 무성한 푸서릿 길, 좁고 호젓한 오솔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산 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 길, 돌이 많이 깔린 돌서 다릿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벼룻길등..
혹시 “에움길”이나 “숫눈길”을 아시나요? 에움길은 빙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길이라는 뜻으로 지름길은 질러가는 가까운 길이고 에움길은 에둘러 돌아서 가는 먼길입니다. 그리고 “숫눈길”은 눈이 소복이 내린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사람의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을 뜻합니다.
이런 도로나 거리를 뜻하는 “길”을 생각하다보니 60년대의 새마을 사업이 생각납니다. 그때 정겹던 길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희 텃논 일부가 마을앞 도로 확장에 편입되었는데 한뼘의 땅도 귀하게 여기시던 할머니께서 의외로 “길을 내주는 것은 큰 적덕”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빗물이 씻겨나간 신작로를 보수하기 위해서 가가호호 책임 구역에 자갈을 가져다 뿌리던 “도로 부역”이 떠오릅니다.
다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도의 “길”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서의 “길”은 도로나 거리가 주는 뜻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살길을 찾아라”, “네 앞길은 네가 개척하라”, “내 갈길을 가야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길이 없다”등의 쓰임에서 보듯이 이 “길”은 살아가는 방법이거나 삶 그 자체라 하겠습니다.
영어“way”도 “street”와 달리 같은 중의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때 서양 사람들도 길에서 인생을 연상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길”위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헤매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가고, 누군가는 한길로 묵묵히 갑니다. 물론, 이길에도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고 탄탄한 대로가 있으면 막다른 골목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같은길도 없고, 오직 나만의 길만 있을 뿐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에게는 “yes, it was my way”였고, “I did it my way”였습니다.
다음은 문학적이고 철학적, 사유적인 “길”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본래 “길”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길을 간다”는 말보다 “길을 떠난다”는 말은 사유적이고 애잔하고 때로는 결연하기도 합니다.
예수는 일찍이 “나는 길이요”라고 했으며 불교나 유교, 도교등 동양 사상에서의 공통적 이념은 “도”라고 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고행의 길도 있고 득도의 길도 있고, 영적인 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보이지 않는 길이요 쉽게가는 지름길도 아니고 수많은 갈래의 에움길을 돌고 돌아 이르는 “길”입니다.
한편 우리는 “인생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인생길”의 함의는 발로 걷는길은 물론 아니며 그렇다고 살아가는 방도의 길만도 아니고 철학적 사유의 길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삶의 길이 사유적 길의 뜻을 담아 문학적으로 실체적 길에 비유하여 이르는 중의적인 말입니다.
또한 우리말에 한번간 길도 잘 모르는 것을 “길치”라고 하지요. 지난날 우리는 경험많은 노인에게 길을 물었고 삶의 길도 배웠기 때문에 노인들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신세대들은 앉은 자리에서 문제 해결책을 검색하는가 하면 날로 변하는 도로망을 네비게이션으로 찾을수 있어 노인의 경험치가 필요없게 되었으며 이제는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길”을 묻는 초역전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신세대들에게 그간 노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써오던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제 노인들은 길치가 되어 길위에서 걸리적 거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여러 “길”을 살펴 보았습니다만, “길”은 산디아고 길이거나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숲길이거나 동네 둘레길이거나 입신양명의 길이거나 간에 우리의 발길이 곧 삶이요, 우리네 인생이 곧 길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마이웨이”를 가는 겁니다. 다만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에움길로 돌아서 갈것인가 하는 속도와 방향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지름길로 가면 일찍 이룰수 있겠지만, 그만큼 삶에서 누락되고 생략되는게 많을 것이고 에움길로 가면 늦지만 꽃도 구경하고 새소리도 듣고 동반자와 대화도 나눌 것입니다.
끝으로 사랑의 신산함을 에움길로 묘사한 시한수로 “길”에 대한 난해하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힐링하시기 바랍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중략)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하나의 에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