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옛것은 소중한겨”라는 광고 문구가 유명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지난호(제 24호)의 설날 단상에 이어 우리나라 세시 풍습이 가장 많은 정월 대보름의 전통 풍습을 교민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지난 2월 15일은 정월 대보름으로 한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날로 우리나라 전통 명절인 설, 단오, 한식, 추석과 함께 5대 명절로 꼽힙니다.
정월 대보름은 다른 명절과 다르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풍습과 의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징은 모든 제례가 마을 공동으로 이루어져 동제라 했으며 모든 세시 풍습도 풍년과 마을 안정,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공동체 의식으로 행하여 왔습니다.
먼저 정월 대보름날의 대표적인 음식은 오곡밥, 진채, 부럼, 귀밝이 술입니다.
이중 “오곡밥”은 인간의 오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생명이 돋아나는 봄철을 앞두고 오장육부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오곡밥은 찹쌀, 찰 옥수수, 차좁쌀, 팥, 콩등 다섯가지로 지은 밥으로 그해에 오곡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합니다.
대보름 전날 밤에는 아이들은 다섯집 이상 밥을 얻어다 먹었으며, 일꾼들은 오곡밥 아홉그릇을 먹고 거름 아홉짐을 논에 내었다 합니다.
그리고 오곡밥과 함께 먹는 “진채”는 묵은 나물이라는 뜻으로 호박꼬지, 버섯, 순무, 무잎, 가지, 산나물등을 말린 것으로 이 역시 다섯가지 이상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부럼”인데 이는 밤, 호두, 잣, 땅콩, 은행등 껍질이 단단한 견과류를 말하며 대보름달 이른 아침에 깨물어 먹는다 하여 “부럼깨기”, “부럼먹기”라 했으며 이를 먹으면 이가 튼튼해 지고 부스럼 (종기)이 안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대보름날 아침에는 “귀밝이 술”이라 하여 청주 한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일년동안 즐거운 소식만을 듣난다 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마셨다 합니다.
이런 정월 대보름 음식들은 농산물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겠으나 겨울동안 보충하지 못했던 영양소를 균형있게 섭취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하겠습니다.
이는 오늘날 노령화의 가속화와 코로나 19로 인한 면역과 영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날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건강기능 식품의 원조라 하겠습니다. 건강기능 식품이라 하면 어릴적에 국민 영양제였던 원기소가 생각이 나며 외국 여행시 선물로 인기리에 주고 받던 영양제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다음은 정월 대보름날 세시 풍습을 알아보겠습니다. 대보름 전날은 개보름이라 하여 개에게는 Y자 모양의 복숭아 나무나 버들가지로 목걸이를 해주고 집안에 불을 밝혀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 하여 잠든 동생들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놓고 놀려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복토 훔치기”라 하여 부잣집이나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의 흙을 파다 부뚜막에 바르는 풍습이 있었는데 옛날 종로에는 관원을 배치하고 부잣집에서는 노비를 세워 흙파가는 것을 막았다 합니다.
그리고 대보름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더위 팔기”를 하였는데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상대가 대답하면 “내더위 네더위 먼저 더위”하며 더위팔기를 하였습니다.
한편 동네 사람들은 마을안 큰나무, 바위, 십자거리등에서 풍년과 마을 안정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 다음 마을 악귀를 몰아내는 “지신 밟기”를 했는데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찾아가 창고, 부엌, 장독대, 우물, 외양간등을 돌고 집주인은 마당에 술상과 동네 공동 비용으로 사용할 곡식 (전곡)을 내놓았지요. 한편 이날 동네 송아지에게는 “코뚜레”를 하였는데 8개월 이상 성장한 송아지 코를 뚫어 코뚜레와 멍에, 고삐를 메었습니다. 코뚜레와 멍에는 요즘도 악세사리로 만들어 부자되라는 뜻으로 상점에 걸어 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달맞이”를 했는데 달빛이 희면 그해 장마가 지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대보름날에는 금기 사항도 많았는데 여름내내 더위먹고 장마로 논뚝이 터진다 하여 찬물을 먹지 말라 했으며, 여름에 파리가 준동하고 몸에 부스럼이 생긴다 하여 비린것을 먹지 않았고 개에게는 이날 밥을 주면 여름내 잠만 잔다하여 개밥을 주지 않았으며 마당을 쓸면 복이 나간다 했고, 대보름날에 칼을 쓰면 상스럽다 하여 칼질을 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속놀이로는 설부터 이어오는 윷놀이, 연날리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널뛰기등이 행하여 졌습니다.
정월 대보름날에 대표적이 윷놀이는 도 (돼지), 개(개), 걸(양), 윷 (소), 모 (말)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농경 사회에서 친숙한 동물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마을마다 “척사대회”를 열고 며칠간 술판과 함께 즐기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연날리기”는 찬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시린손을 호호 불면서 누가 더 높이, 멀리 날리나 시합도 하고 연줄 끊기 싸움을 위해 풀에 유리나 사기 가루를 섞어 연줄에 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대보름날 저녁에 연꼬리에 불을 붙여 나쁜 기운과 함께 날려 보내는 “액막이”도 하였습니다.
또한 동네간 “쥐불 싸움”도 하였는데 이를 위해 당시 어렵게 구한 깡통에 구멍을 숭숭 뚫고 그안에 광솔로 불을 피우고는 말린 닭똥과 헌고무신을 넣어 불똥이 멀리 날아가 상대방에게 떨어지도록 깡통에 긴 철사끈을 메어 빙빙 돌리는 쥐불 싸움을 하였으며 한켠에서는 밭두렁과 논두렁에 불을 놓아 해충을 태우고 그 재는 거름이 되게하는 “쥐불놀이”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팽이치기”를 즐겼는데 팽이 끝에 쇠구슬이나 못을 박고 닭나무 껍질이나 노끈등 질긴 끈으로 팽이채를 만들어 마당과 얼음판에서 팽이 싸움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놀이들은 사라지고 놀이기구만 민속 박물관의 진열품이 되었으며 이런 추억을 이야기할 우리세대가 떠나면 고전에서나 언급될것 같아 허무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누가 보든 안보든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은 충청도 촌노의 심사에서 “옛것은 소중한겨”라며 추억을 더듬어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