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번 호에 게재한 최초의 미국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 (독자 투고 19)에 이어 최초 미국 방문자와 미국 유학 1호에 관한 내용을 교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한국인이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것은 1882년 조선, 미국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미국에서는 1883년 6월 푸드 (Foote L. H)를 한국 초대 공사로 파견함에 따라 조정 (고종)에서도 답례 사절로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보빙사”의 전권대사는 명성황후의 조카이며 개혁파인 민병익 (당시 23세)이 맡았고, 홍영식 (부공사), 서광범 (종사관), 최경식 (경호실장), 유길준, 현흥택, 고광철, 변수등 8명과 외국인 통역관 (미국, 중국, 일본) 3명등 1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1883년 7월 26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일본을 경유하여 50여일 후인 9월 18일 샌 프란시스코항에 도착하여 팔레스 호텔에 묵으면서 뉴욕 산업 박람회, 육군 사관학교, 센트럴 파크, 시범 농장, 농기계 공장, 제약사등을 방문하였습니다. 그후, 홍영식, 최경석, 현홍택, 고광철은 40여일만에 귀국하고, 민영식, 서광범, 변수는 미국 대통령의 권유로 미국의 경비 지원과 미해군 포크 소위의 안내로 1883년 12월 뉴욕항에서 미군함을 타고 영국, 로마, 홍콩등을 시찰하였습니다. 그리고 1884년 5월 31일 제물포로 귀국하였으며, 유길준은 미국에 남아 유학하였는데 이가 곧 미국 유학 1호가 되었습니다.
당시 사절단은 미국에 체류하면서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엘레베이터를 처음 타면서 철감옥에 갇히는 줄알고 크게 놀라는가 하면, 흔들리면서 올라갈때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탁에 포크와 나이프가 있는것을 보고 “양반식사에 쇠스랑과 칼이 올라 오다니..”하고 불쾌해 하기도 했답니다.
또한 샌 프란시스코에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에 도착하여 수도 공급시설, 링컨 공원, 시카고 만국 박람회를 관람하였는데, 처음 기차를 탄 그들은 “바람을 타고 구름위를 나는 듯 했다”고 했답니다.
또한 1883년 9월 18일 미국 대통령 체스더 아서를 접견하면서 민영식이 신호를 하자 일행은 왕에게 하듯 대통령에게 절을 하고 난후 서양식으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일행은 뉴욕 전기 박람회장에 갔을때 “도대체 그 전기의 원리가 뭐요? 귀신 소행이 아닌가”라고 눈이 휘둥그래져 가지고 의심하기도 했답니다.
그후 고종은 사절단으로부터 전기 이야기를 듣고 에디슨에게 친서를 보냈으며 에디슨 전기 회사에서는 궁궐에 전기 공사를 해주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887년 3월 6일 백열등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절단의 건의에 따라 미국 우편제도를 도입했고, 미국에서 가져온 채소 씨앗둥으로 농업 시험장을 만들고 농기계 제작소 설치등 새로운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한편 미국 유학 1호인 유길준 (1856-1914)은 1881년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 게이오 대학에 입학 (당시 26세) 하였으나, 임오군란 (1882년 6월 9일 발생)으로 중퇴한바 있는데, 미국에 남아 메사추세츠 고교와 더마 어학원을 거쳐 보스톤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갑신정변 (1884년 12월 4일 발생)으로 국비 지원이 중단되자, 1885년 9월 2년간의 유학 끝에 귀국하였다 합니다.
그는 일어에 능통했고 미국에서도 상투를 자르고 독학으로 3개월만에 영어를 유창하게 했답니다. 이와같이 유길준은 국비로 일본과 미국 유학 1호이긴하나 학업중단으로 학위를 받지 못했으며 미국 대학 학위 1호는 보빙사 동행자였던 변수 (1861-1892)로서 그는 갑신정변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베어리로 어학원을 거쳐 1887년 9월 메릴랜드 주립대학 농과 대학에 진학하여 1891년 6월 이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 농무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중 열차사고로 애석하게도 32세에 이국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