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초등교육은 1895년 고종이 처음 근대 교육 기관인 “소학교”를 전국에 38개교를 세웠다. 그후 보통학교, 심상학교라 했고 1941년 일제는 국민학교라 했으나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초등학교라 했다.
그리고 한일 합방후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는 고등 보통학교(5년제)에 진학하였으나 1938년 5년제 중학교로 변경하였으며 1946년 미군 정청에서 6년제 중학교로 개편했고 1951년 현 6․3․3․4 학제가 되었다.
이와같은 학제 변천은 공주 고등학교 역사에 잘 나타나는데 1921년 충남도내 유지들이 충남 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 보통 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고 청원과 함께 모금운동을 전개하자 일제는 1922년 충남에 조선인을 위한 최초의 공주 공립 고등 보통 학교 설립을 인가하였다.
그후 1938년 5년제 중학교가 된 후 1946년 6년제 중학교가 되었고 1951년 3년제 공주 고등학교와 공주 중학교로 개편되었다. 이로 인해 공주고와 공주 중학교의 “반만년 역사위에 …”로 시작되는 교가는 마지막 부분(공중 건아들, 공주고 건아들)만 다르다. 한편 공주고는 일제시대 설립되었으나 1926년 6.10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공주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고(건국훈장 9명) 6.25 전쟁 때는 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입대(참전 유공자 91명) 했으며 4.19 혁명때는 공주 지역 학생 시위 (4.26 학생 의거)를 주도하였다.
필자는 공주 시골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공주 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당시 교무실 옆 숙직실에서 호야불을 달아 놓고 담임 선생님의 지도하에 10여명이 소위 과외 공부를 하였는데 일찍 끝내기 위해 교무실에 걸려 있는 큰 원형 시계바늘을 돌려 놓고 멀리 귀가하는 친구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했던 추억이 있다.
또한 당시 공주 읍내에는 공주중(공주고), 사대 부중(사대 부고), 봉황중 (공주 농고), 영명중 (영명고), 사범 병설중 (사범 학교), 공주 여중 (공주 여고)과 공주 사범 대학이 있었는데 그때는 진학 상담 같은것은 없었고 그저 농사 지을거면 농업학교, 장사 시키려면 영명학교 (1951년 이전은 영명 상업학교 였음) , 공부는 잘하나 집안이 어려우면 사범학교, 공부를 계속 시키려면 공주 중학교에 보내라는것이 통념이었다.
다음 우리 나라의 고등교육 (대학)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서기 372년 고구려때의 ‘태학’은 상류층 자제들 중에서 뽑아 유교, 경전, 무예등을 가르쳤고 교원은 박사라 칭하였다.
그후 서기 682년 신라시대는 “국학”을 설치하고 논어, 효경, 주역등을 가르쳤는데 특히 산학 (수학)을 처음 설치 했는데 졸업자에게는 관직을 주었다. 당시 교원의 직제는 경, 박사, 조교, 대사 등으로 구분 하였다. 그리고 서기 986년 고려시대는 ‘대학’을 설치하고 국자감, 국학, 성균감으로 칭하다 서기1308년 성균관 이라 하였다.
그후 1398년 조선 태종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 하면서 현재의 명륜동에 성균관을 이전하고 개경의 성균관은 향교로 격하시켰다. 그리하여 현 성균관 대학교는 1398년을 건학 원년으로 하여 1998년 개교 600주년 행사를 하였다.
한편 북한에서는 1992년 김일성이 개경의 성균관 인근에 있던 개성 경공업 대학을 확대 개편하여 1992년 10월 1일 ‘고려 성균관 대학교’ 라 하고 건학 년도를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이 설치된 992년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대학이라 선전하며 지난 2022년 고려 성균관 대학 개교 1030주년 기념 보고 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필자는 성균관 대학 61학번이다. 저는 고3 때 공주의 4.19 학생시위에 이어 7.29 국회의원 선거시 국민 계몽대를 운영하고 학교는 휴교, 휴학 등의 반복으로 인해 수업을 제대로 못했기에 친구 2명과 함께 절에가서 공부하다 61년 초 상경하여 제 1 지망 대학 앞에서 하숙하며 대학 정문에서 파는 예상 문제집등을 사서 벼락 공부를 하였다 당시 대학 입시는 전, 후기로 나누어 실시하였는데 전기는 서울대, 연대, 고대, 중앙대, 한양대, 경희대등 이였고 후기 모집인 성균관 대학에는 소위 SKY대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이 응시 할수 있었다.
그때 필자는 합격자 발표를 보고 원남동 우체국에 가서 아버님께 전보를 치고 합격자 소집에 참가한 후 귀가 하였다. 그무렵 아버님 친구분들이 “성균관은 옛날에 아무나 들어갔던 곳인가, 사실은 성균관 대학이 국립 대학이 되어야 했다”라고 아버님을 위로(?)하는 말씀을 들었다.
이와 관련한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일제는 일본에 있는 5개 제국 대학(도쿄, 교토, 도호쿠, 규슈, 홋카이도)에 이어 1924년 조선에 제 6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 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성균관에 경학원, 명륜학원, 명륜 연성소등을 설치 하였으나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청정에서는 경성제국 대학을 인수하여 1946년 10월 1일 서울대학교를 개교하였다. 그리고 성균관의 기능을 회복시킴에 따라 성균관 대학 기성회 (위원장: 김창숙, 고문: 이승만, 김구)가 발족되고 이어 1946년 9월 25 일 성균관 대학을 개교 하였다.
그후 성균관 대학 학교 재단 법인은 삼성 문화 재단, 봉명 그룹등에 이어 1996년 삼성이 재단을 운영 중이다. 그리고 삼성은 2013년 충남 아산에 “충남 삼성 고등학교”를 설립 하였는데 그곳 학생들의 성균관대 진학률이 높다 한다.
필자는 1961년 신입생 시절 양복기지로 된 교복과 사각모를 쓰고 명륜당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여름에는 미색 (성대 교목인 은행나무의 은행 아이 보리색) 남방 교복을 입고 담넘어 고궁숲에서 놀던 추억이 새롭다.
한편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엔 있는 충남 대학교는 충남도민의 성금으로 건립 되었고 필자가 국가 공무원(3급으로 퇴직)으로 대전에서 근무시 충남대와 업무 협조 기회가 많았으며 공주고교 선배 세분이 충남대 총장을 역임 하였기에 관심이 남다르다.
먼저 충남대학교는 1951년 11.23일 충남도내 유지들이 지역인재 양성을 위해 도내 시장·군수·경찰 서장 연석 회의를 개최하고 “충남 대학교 설립기성회”(회장: 도지사 이진영, 지부장: 시장, 군수, 지부이사: 경찰 서장)를 조직하고 모금 (목표액 100억)하였는데, 돈이 없으면 곡물을 내는 등 전시하에서도 전 도민이 십시 일반으로 기부하였다.
그리하여 1952년 5. 25일 충남 도립 대학을 설립하였으나 1962년 충북 도립 대학과 합병하여 국립 충청대학이 되었다가 1963년 2월 국립 충남 대학교가 되었다.
충남대 제 5대 김영묵 총장 (공주고 9회)은 국립대로서의 발전 토대를 마련 하였는데 의예과 신설, 백제 문화를 계승한 박물관을 설치 하였고 제 8,9대 서명원 총장(공주고 11회, 문교부 장관 역임)은 서울대 부총장 재직시 서울 관악 캠퍼스 이전 경험을 토대로 대전 문화동 캠퍼스를 대덕 캠퍼스로의 이전 사업을 추친하여 퇴임시인 1985년 당시 40만평 대지에 건물 4만 5천평을 신축하였는데 서총장께서는 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라며 캠퍼스 중앙에 배치한 이유를 설명하고 충남대 병원 신축시 외벽의 색깔을 물어 보시는 등 자상하고 세심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서총장의 충남대 확장기의 업적은 본관앞에 세워진 그의 흉상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제10대 이창갑 총장 (공주고 18회)은 건축공학 전문가로서 캠퍼스 이전 정착기 사업을 완수 하였는데 특히 이총장이 세운 학교 정문은 충대를 상징하는 명물로 충대인들의 지부심 이기도 하다.이렇께 도민의 성금에 의해 도립 대학으로 출발한 국립 충남 대학교는 현재 3개 캠퍼스 (대전 보운, 대덕, 세종)에 17개 단과 대학 및 직할 학부와 19개 대학원, 61개 연구 기관을 보유한 대학으로 발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