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뉴스 독자 투고 (제 62호): 한국 전쟁 75주년을 맞아 어릴적 인민군을 처음 보고나서 겪은 인공시대와 피난민에 얽힌 사연을 회상해 보면서 미군수 물자와 국군 아저씨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2025년 6월 25일은 한국 전쟁 75주년이 되는 달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여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을 맺기까지 전 국토가 초토화 되고 당시 인구의 10%가 사상되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 휴전이 되어 현재까지 남북이 대치되고 있다.

내가 인민군을 처음 본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쯤인 1950년 7.12일경이라 생각이 된다. (“한국 전쟁 일지”에는 7.12일 금강교가 폭파되기 전후 소수의 인민군이 금강을 도하했다고 기록되어 있음). 

당시 저희집은 공주에서 부여 방면으로 8km되는 도로에서 5백여 미터 떨어진 야산 밑에 있었다. 아침 일찍 옆에 붙은 큰집에 가보니 인민군 10여명이 있었고 그들이 타고온 말들은 대나무 울타리와 감나무 밑에 매어 있었다.

그날 낮 인민군 두어명이 우리집에 와서 학교 다니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하니 “우리 때문에 학교에 못갔구나” 하면서 닭 잡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마당 가운데에 모이를 주자 닭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자 인민군은 긴 대나무 장대로 원을 그리듯 닭 다리 부분을 향해 돌려치자 닭 몇마리가 쓰러졌고 인민군은 이를 주어 가지고 갔다.

그날 저녁이 되자 인민군들은 말을 타고 동네 앞 도랑을 따라 남쪽으로 달려갔다.

그후 저희 가족은 2km정도 떨어진 산골 마을로 피난가서 남의 집 허청에서 보릿대 위에 멍석을 깔고 며칠간 지내다 왔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갑오년 난리 (동학난)때는 장독대 뒤에서 숨어 난을 피했는데 집을 버리고 어딜 가냐며 극구 피난가기를 반대하였다.

그리고는 인공시대 (인민 공화국 치하)를 맞았다. 우리 머슴 아저씨는 완장 차고 기다란 참나무 방망이를 들고 다녔으며 동네 아주머니가 여성 동맹 위원장 이었는데 그 아주머니 목소리가 그렇게 크고 활동적이고 무서운 사람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당시 반동 분자니 동무니 인민이란 낯선 말을 들었고 학교에서는 “장백산 줄기 줄기…”로 시작하는 김일성 장군 노래도 배우고 인공기를 그릴때 별 그리기에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난다.

한편 전쟁 중 피난민들이 동네에 와서 하루 이틀 묵어가고 더러는 오랫동안 살기도 하였는데 그 와중에 우리 동네 총각과 결혼한 피난 온 처녀는 평생 “안성댁”으로 불리었다.

또한 미군은 공주에서 후퇴 (1950. 7.16일)하고 공주 지역을 다시 탈환 (1950. 9.25일) 하면서 우리 동네 뒷산에서 야영을 했는데 그때 버리고 간 박스 (지금 생각하니 씨레이션)를 주어 그안에 있는 봉지를 뜯어 검은 가루 (커피)면 버리고 흰가루 (설탕)면 먹었던 일이며 치약을 맛도 보고 손에 발라도 보고 구두약은 깡통안에 든것은 파서 버리고 통만 닦아 장난감으로 쓰기도 하고 고기 간스메 (통조림)는 고추장등 양념을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이것이 요즘의 부대찌개 원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한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목총을 들고 훈련을 받으며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때에…”라는 용진가를 불렀고 청년들이 “북진 통일”이라고 머리띠를 두르고 트럭을 타고 훈련소르 갈때 동네 사람들이 길가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환송하기도 하고 국군 장병에게 위문 편지와 위문품을 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맹호부대 (수도 사단) 군인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 아저씨가 휴가오면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였다.  각 가정에서 돌아가며 밥 한끼씩 대접하는가 하면 달걀, 떡등을 갖다 주고 자주 모여 음식을 먹으며 무용담을 듣기도 하였다.

나도 생전 처음 보는 철모며 탄띠, 칼빈총, 대검, 물통 등 군장비에 호기심이 많아 매일 뒤따라 다녔다.  그때 동리 어른들과 찍은 기념 사진 (1953년 초겨울로 추측)이 난생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군인 아저씨는 군 복무 중에 장교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상사로 제대한 후 늦게 낳은 외동 아들 이름을 “장교”라 지었다.

한편 전쟁 후 어린 아이들간에는 탄피와 베아링 (다마) 많이 가진 애가 짱이었는데 그래서 친구들과 공주 백사장에 있던 부서진 탱크에도 가봤고 그때 공주 금강 철교 복구 공사를 구경하기도 하였는데 (금강 철교는 전장 513m, 폭 6.5 m, 1950년 7.12일 미군이 폭파, 1952년 복구 공사 시작, 1956년 9월 정식 개통) 밑에서 빨갛게 달군 쇳덩어리를 위로 던지면 철교 위에서 바가지 같은 것으로 받는 묘기(?)를 신기하게 구경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철교위세 가설재 (비계)를 설치하고 올라가 밑에서 불에 달군 볼트를 위로 던지면 철제 깔때기로 받아서 철판을 조립했던것으로 보임). 

그때 탄피에 몽당 연필을 끼워 쓰기도 하고 총알에 고리를 꽂아 가지고 다녔다. 이렇게 살상용 탄환은 아이들 장난감이 되었고 목숨을 보호하던 철모 파이버 (헬멧)는 오물 푸는 바가지로 사용되는가 하면 방독면 고무 호스는 잘라서 자전거 손잡이에 끼어 쓰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빨갱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는 본래 빨치산에서 유래되었고 빨치산은 러시아의 공산당 조직인 “파르티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빨간색은 기피(?)색깔이 되어 운동회때의 청군, 홍군은 청군, 백군이 되었고 인공 시대 많이 쓰던 “동무”는 친구로 바뀌었다.

내 주변에 불그스레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군대가서 고생을 했는지 “내 자식은 군대가지 않겠지” 했는데 군대 갔다왔고 또 손자도 군대가게 되었다며 이런 대물림 입대가 끝나려면 하루 속히 북한이 망해야 한다”며 당해 보고나서야 북한을 원망하는 것을 보았다.

끝으로 총성은 멈추었으나 하이 브리드전은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종북 세력은 늘어만 가고 국민간 갈등과 편가르기는 심화되고 있는데 무엇이든 금이가면 깨지기 마련이다.  이제라도 6.25 전쟁을 상기하고 좌익, 우익 다투지 말고 우리나라 건국 이념인 “홍익”시대가 열리길 기원한다.

6월이 되면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하고 목청 높여 모두가 부르던 “6.25의 노래”는 20여년전 금지곡이 되고 가사도 바뀌었으나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혼자서 읊조려 본다.

do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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