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월 1일은 우리나라 최대 전통 명절인 설날이었습니다. 설날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날인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이르는 말로 원단, 세초, 년두, 연시라 하면서 천지 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로 여겨 왔습니다.
설의 역사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시대 설맞이 행사를 하였다는 기록등으로 보아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명절인데 이번호에서는 지난 설날에 관해서 교민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설의 애한(?)은 우리나라에 양력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는데 고종 32년 개혁파에 의하여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1일로 정하면서 우리나라 문명사에 처음으로 양력이 등장하였으며 이때부터 양력 1월1일에 설을 쇠는 양력설이 생겼습니다.
그후 1910년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한민족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설명절을 구정으로 격하시키면서 설을 못쇠게 방앗간을 감시하고 설빔옷에 먹물을 뿌리는 등 탄압이 심했습니다. 그래도 양력설을 왜놈설이라며 음력설에 몰래 제사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을 항일운동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1945년 해방후에도 관행대로 양력설을 공휴일로 지내오다 급기야는 1950년 1월1일 3일간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1962년 국가 재건 최고 회의에서 단기 연호를 폐지하고 서기연호를 바꾸면서 양력 1월1일은 설날로 굳어졌습니다.
그후 1990년 양력설 3일을 2일로 단축한데 이어 1999년에는 양력설 하루만을 공휴일로 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양력설, 음력설 이중과세 논란이 생기고 1981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81%가 음력설을 찬성하였음에도 흐지부지 지내다 1985년 겨우 “민속의 날”로 지정하고 처음으로 음력설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양력설이 생긴지 93년 후인 1989년 2월에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민속의 날을 설날로 개칭하고 설 전날을 포함하여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 대부분이 설에 시행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윷놀이, 널뛰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쥐불놀이등으로 정월 보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독자투고에서는 설날 전후 풍습만 간단히 살펴 보고 그외 세시 풍습은 다음 기회에 교민들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설날 전날인 섯달 그믐날은 “까치설”이라 하여 적덕하기, 묵은 세배하기, 복조리 달기 등 소위 “세수 풍습”이 있었습니다.
즉 마을 주변 개울에 짚망태기에 흙과 자갈을 넣어 징검다리를 놓거나 빙판과 진땅에 모래나 왕겨를 뿌리는 등 덕을 쌓는 선행을 하였으며 복조리에 돈, 엿, 성냥등을 넣어 집안에 달아 복을 빌고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집안 곳곳에 등불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설날 아침에는 설빔을 입고 제사를 제내고 음복시에는 “술은 어른들 앞에서 배워야 한다”며 어린 저에게도 술을 주었는데 두손으로 잔을 받아 반쯤 뒤돌아 마신 다음 목례후 잔을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세배돈을 받고는 뒷방에서 형제들끼리 자랑도 하고 시샘도 하였답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 성묘를 하고는 인근 동네를 돌면서 세배를 하였는데 우선 상청이 있는 집과 최연장자가 사시는 집에 들린 다음 집집 마다 세배를 하였답니다. 이때 가는 집마다 음식을 내놓고 아이들에게는 세배돈을 주었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70여년전 할머님께서 돌아가시여 사랑채 대청마루에 상청을 모시고 3년간 상식과 삭망제를 지냈는데 그때 오시는 손님을 위해 하루 100번이상 다과와 술상을 내셨다는 어머님의 옛 이야기가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리고 설음식을 “세찬”이라 했는데 설날 대표적인 음식은 떡국으로 설날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살을 더 먹는다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떡국은 맵살을 찌어 떡메로 친후 손으로 길게 만든 흰가래 떡을 썰어서 끓여 먹었는데 설날 아침에 먹는 이유는 지난해 안좋았던 일은 하얗게 잊으라는 뜻이고 길게 뽑는 이유는 장수를 의미하고 둥글게 써는 것은 엽전 모양으로 재물 운을 비는 마음이라 합니다.
그리고 떡국에는 꿩고기가 으뜸이라고 하는 것은 귀족들이 매사냥으로 잡은 꿩고기를 넣었던 것으로 “꿩대신 닭이다”라는 속담이 이때 생겼다 합니다.
이렇게 오랜역사와 우리의 전통 풍습이 가장 많은 음력설을 93년만에 다시 찾았으나 산업화에 따른 농촌의 쇠락과 각종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설풍습이 사라진 가운데 매장문화의 변화로 인하여 성묘할 산소도 없어진데다 핵가족 시대로 인해 제사도 사라지고 세배할 기회도 없어졌으며 귀하던 떡국도 슈퍼에서 손쉽게 살수 있어 게으른 부인의 단골 메뉴라는 취급을 받으면서 아이들이 즐겨 먹는 떡볶이가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설문화가 변하고 전통놀이가 사라지고 있어 다시 양력설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특히 금년에는 설날이 주말과 연이어 5일을 쉬게 되었으나 코로나의 극성으로 귀성객은 급감했고 외출과 모임을 기피하여 설빔이나 세시 풍습은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적막한 설 연휴 5일이였습니다. 교민들께서는 그 옛날 갈탄 난로위에 벤또(도시락)을 쌓아놓고 풍금소리에 맞춰 부르던 설날 동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은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를 불러 보면서 잠시나마 설날 추억을 회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