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각 지역민의 성향 (성격, 기질등)에 대한 기록으로는 고려사에 나오는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 십조”와 조선 건국 공신 정도전의 조선 8도민을 평한 기록과 조선 중기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의 8역지,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의 “나학천 비기”등이 있다.
먼저 고려 태조 왕건이 943년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10가지 유훈인 “훈요 10조”중 제 8조에는 차현 (차령산맥)이남, 공주강 (금강)외의 산형지세가 모두 본주를 배역해 인심 또한 그러하니 저 아래녘의 군민이 조정에 참여해 왕후 국적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혹 통합(후백제의 합병)의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중략) 비록 양민이라도 벼슬자리에 있어 용사하지 못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조선 8도 사람을 평하라 한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경기도는 경중미인 (거울에 비친 미인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아름다워도 현실에 있지 않고 거울속에 있으니 그야말로 그림에 떡, 바꾸어 말하면 겉은 번듯하지만 실속이 없다는 뜻)이며 충청도는 청풍명월 (충청도는 양반의 고향답게 맑은 바람이 불고 달이 너무 밝은 것과 같다는 뜻)이고 전라도는 풍정세류 (바람앞의 가는 버들같이 지조가 없다는 뜻)이며 경상도는 태산준령 (큰산의 험한 고개 같다는 뜻으로 절개의 상징인 소나무와 대나무에 비유)이고 강원도는 암하노불 (바위 아래 늙은 부처라는 뜻으로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다는 뜻)이며, 황해도는 춘파 투석 (봄 파도에 돌을 던진다는 뜻으로 꽃밭에 돌을 던지는 나쁜 심보를 뜻함)이고 평안도는 산림 맹호 (산속의 호랑이로 절대 강자라는 뜻으로 이곳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면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뜻으로 경계하라는 의미)이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이전 구투 (진흙에서 싸우는 개처럼 맹렬하고 악착같다는 뜻으로 천박하다는 의미 내포)라고 하자 이성계의 얼굴색이 변함에 따라 눈치빠른 정도전이 “석전 경우 (자갈 밭을 가는 소라는 뜻으로 부지런한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의미) 올시다”라고 바꾸어 말하자 그제야 용안이 희색이 되었다 한다.
여기서 정도전이 충청도를 호평한것은 그의 고향이 충북 단양 (일설은 경북 봉하)이고 이곳에는 정도전의 호를 딴 도담 삼봉이 있으며 그의 외가도 충북이라 한다. 현재 충북 제천시에는 청풍면이 있고 이곳에는 청풍 문화재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조선 중기 (1751년)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의 8역지에는 평안도는 인심이 순수하며 경상도는 진실하고 함경도는 오랑캐와 접경하여 성질이 거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악하여 사납고 모질며 강원도는 산골짜기 백성으로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직 간사하고 나쁜데 쉽게 움직이고 경기도는 도성 밖으로 재물이 시들어 쇠하며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재만 쫓는다고 했다. 이중환은 당색이 남인이기 때문에 남인의 기반인 경상도에 호의적이었고 이중환의 고향은 충남 공주이고 충남 강경에서 택리지를 탈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이여송의 지리 참모로 조선에 왔던 두사총의 사위인 나학천의 “나학천 비결”에는 함경도 사람은 우직 지협 (사람은 우직하지만 지혜를 가졌다), 평안도 사람은 경강 용예 (의지가 강하고 용감하며 날세다), 황해도 사람은 운주 무실 (느리고 어리석어 옹골차지 못하다), 경기도 사람은 선용 후유 (앞에서는 억세고 뒤로는 부드럽다), 강원도 사람은 칩복 지단 (자기 거처에 가만히 있고 아는 것이 부족하다), 충청도 사람은 부경 용호 (행동이 경솔하지만 용맹하다), 경상도 사람은 우순 질신 (어리석고 순하고 질박하지만 참된 기질이 있다), 전라도 사람은 사교 경예 (속임이 많고 교활하고 가벼우나 예술성이 있다)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남 (충청, 전라, 경상)은 지형도 다르고 생산되는 산물이 다르므로 사람의 개성도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한 속설로 돈이 갑자기 생기면 경상도 사람은 집을 고치고 전라도 사람은 음식을 해먹고 충청도 사람은 옷을 사입는다는 말이 있다.
이를 반증하듯 영남에는 전국 고택 60%가 보존되어 있고 전라도는 한반도에서 평야가 가장 넓은데다가 해안가 갯벌은 논, 밭에 이어 제3의 농토로 육지는 흉년이 들어도 뻘 밭에 들어가면 굶어죽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먹을거리와 요리가 발달할 수 밖에 없다 하겠다. 그리고 충청도는 고위 벼슬을 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노론의 본거지였으므로 양반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양반들은 체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의관을 잘챙겨 입어야 했을 것이다.
끝으로 다음기회에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충정도와 관련된 기록과 전통적인 주민 성향 및 속설등을 좀더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