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뉴스 독자 투고 (29): 교민들께서는 이때쯤이면 정자나무와 밀대 방석에서 보내던 여름풍경이며 우물과 시냇물에서 등목하고 물장구 치고 참외서리하던 추억이며 보리와 밀로 만든것으로 주점부리 하는등 핫바지 방귀새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꿈속같이 정겨우리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추억이 있지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 어린시절 고향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등 모든 과거는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이 추억 가운데 고향에 대한 추억은 그 어느 추억보다 오래토록 머리속에 남아있게 마련이어서 이 고향에 대한 추억을 향수, 즉 노스텔지어라고 합니다.

그간 산업화와 도시화의 급속으로 타향에서 향수에 젖어 사는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의 고향 옛집을 그리워 하는 마음, 고향 친구와 동리 사람들을 그리워 하는 마음, 고향 정자나무와 우물과 시냇물, 마을 길과 뒷동산 등에 대한  향수심은 남다르리라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옛날 고향의 한여름 풍경과 그때의 추억을 교민들과 회상해 보고자 합니다.

저희 고향은 충청도의 양지 바른 동산 밑에 남향집 열댓집이 모여 살았는데 마을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마을입구 오거리 길가에는 정자 나무가 있고 공동 우물 하나와 집안 우물 두어개가 있던 정겨운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렇게 정겹던 옛고향 마을이 지금은 주소도 도로명으로 바뀌어 (2012년 1월 시행) 귀 익은 동리 이름도 사라지고 마을 모습도 변하여 정들었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계절은 변함없이 찾아와 그나마 남은 논에는 벼가 무성히 자라고 제철 과일인 참외, 수박, 복숭아, 옥수수, 감자등은 제맛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무더위와 모기등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적 학교에서 뛰어 오거나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니다 집에 와서는 우물물에 사카린이나 당원을 타서 벌컥벌컥 마시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저녁에는 집집마다 앞마당에 밀대로 두툼하게 엮어 만든 밀대 방석을 깔고 한 모퉁이에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가족들이 더위를 식혔지요.  당시 모깃불은 모기가 연기를 싫어해서 도망가는줄 알았는데 (기피제) 그게 아니고 모기가 연기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좋아해서 모깃불 쪽으로 간다는 것을 (유인제) 요즘 알았습니다.

밀대 방석에 둘러앉아 사카린과 소금을 넣어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밤참으로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이때 개구장이들은 참외와 복숭아 서리를 해와서 먹으며 무용담 (?)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밀대 방석에 누워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을 헤며 별똥이 떨어지면 얼른 소원을 빌기도 했지요. 이때 동리개 한마리가 짖으면 온동네 개가 덩달아 짖고 모기불 옆에 매어논 소가 모기나 파리를 쫓기 위해 머리를 흔들면 워낭소리가 들리기도 했던 시골 여름밤 풍경이 아련합니다.

또한 당시에는 저녁이 되면 아낙네들은 평소 수다장소로 이용하던 공동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거나 시냇물 한켠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짓궂은 남정네들이 괴성을 내어 놀라게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겨울에는 동네 사랑방으로 마실을 갔으나 여름에는 정자나무 밑에 모여 담소도 나누고 잠도 자기도 했습니다.  이때 장난끼 많은 머슴아들은 잠자는 친구의 핫바지 가랭이 속으로 개구리를 넣는가 하면 성냥개비 태운재를 발가락이나 손가락 사이에 끼워놓고 불을 붙이는 “불침”을 놓기도 하는 등 장난도 유달랐습니다.

한편 당시 여름의 주식으로는 보리와 밀이었는데 그 보리와 밀은 가난한 시절 애닳은 사연이 많았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주전부리로 인기를 끌던 볶은 보리와 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는가 하면 그 가루를 물에 타서 허기를 면하기도 하고 한웅큼 입에 가득 넣고 친구 얼굴에 품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특히 소다와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빵과 강남콩을 넣은 떡은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꽁보리 밥은 소쿠리에 담아 삼베보로 덮어 부엌 천정에 매달아 놓았다 먹곤 했는데 그때의 보리 밥상과 관련한 감회는 각자 다르리라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등산로에 자리한 토속식당에서 보리밥, 풋고추, 날된장, 열무김치, 애호박을 넣고 끓인 된장국, 호박잎등이 별미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밀대는 밀대 방석은 물론 밀집모자와 도롱이(비올때 어깨에 걸치는 우의)를 만들었고 그 도롱이는 때로는 방석으로 쓰거나 잠잘때 깔고 자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밀대에 염색을 하여 여치집을 만드는등 여름방학 공작 숙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시절 평화롭던 고향의 정경과 고향에서 보낸 여름추억을 회상해 보니 그 시절이 그립고 그 느낌만으로도 꿈같이 감미롭습니다.

나이와 추억은 비례하나 추억과 희망은 반비례한다니 옛추억의 회상은 이쯤에서 마칠까 합니다.

do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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