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뉴스 독자 투고 (제 46호): 이번호에서는 지난호의 “고향(집)”에 관한 단상에 이어 우리의 주거 문화중 대중화된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교민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주거문화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선사시대에는 자연 동굴이나 움집에서 거주하였으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초가지붕, 조선시대에는 한옥 (온돌과 마루)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그후 주택은 일반주택, 아파트식 주택, 인텔리전트 주택, 땅콩 주택, 캡슐 주택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으며 미래 예상 주택으로는 수중 주택으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등의 이유로 물속으로 이동하여 지을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일반화된 아파트식 주택은 일제시대때 생기기 시작하여 현재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대가 60% (전국 최고는 세종시로 73%임)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파트라는 용어는 아파트먼트 (apartment)에서 유래된것으로 한 건물안에 여러가구가 독립적으로 살수 있도록 지은 5층 이상 (5층이하는 빌라)의 빌딩 주택을 말하며 이 아파트는 맨션 아파트, 상가 아파트, 원룸 아파트, 주상 복합 아파트등의 형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형 주택은 일제 강점기인 일본인 기술자와 자본에 의해 준공된 서울 회현동의 미쿠니 아파트가 있는데 이는 5층 미만으로 공중 화장실과 식당이 있어 아파트라기 보다는 합숙소에 가깝고 이때 건축된 내자동, 채운동의 미쿠니 아파트 역시 건축법상 아파트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한국의 최초 아파트는 1937년 건축된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충정 아파트”(일명 설계자의 이름을 딴 도요타 아파트, 유림 아파트)로 지하 1층 지상 5층 높이로 60세대 규모였으며 서울시에서는 2013년에 우리나라 최초 아파트로 공인하고 “100년 후의 보물, 서울속 미래 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그후 순수 우리의 기술로 지어진 최초 아파트는 1958년에 완공한 서울 종암 아파트 (1993년 철거, 현 종암 선경 아파트)로 3개동 5~6층, 152 가구로 수세식 화장실이 처음 도입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어 우리나라의 이촌 향도로 인한 서울의 인구 과밀과 주택난 해소를 위해 박정희 정부가 생활 혁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가 등장하였는데 1962년에 건축된 마포 아파트 (10개동, 지상 6층, 642세대, 현재 마포 삼성 아파트)입니다.

그 뒤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되었는데 우리나라 최대 복수 단지로 세대수가 가장 많은 아파트로는 1985년부터 입주한 서울 상계동 주공 아파트로 무려 19개 단지에 36,909 세대나 됩니다.

그리고 단일 단지로 세대수가 가장 많은 곳은 2018년에 입주한 서울 송파구에 있는 헬리오시 아파트로 84개동 9,510세대라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작은 읍, 면의 전체 세대에 맞먹는 규모로 농촌의 “황성 옛터”가된 실태를 짐작케 합니다.

대전의 경우는 1971년에 건축된 석교동 제일 아파트 (1개동 48 세대)에 이어 남양, 쌍용, 계룡 아파트가 신축되었으나 거의 4~5층 소규모로 현 시점으로는 빌라에 가깝고 최초의 민영 아파트는 1978년에 건축된 대전 문화동 삼익 아파트 (3개동 14층, 456세대)입니다.

한편 아파트의 명칭을 살펴보면 1970년 초에는 장미, 개나리, 목화 아파트등 짧고 기억에 남는 이름이였으나 70년대 후반에는 동네 이름 다음에 건설사명 (예: 목동 현대 아파트등)이었으나 요즘은 지역명-건설사명-브랜드-펫네임 식으로 변하여 이름이 길어짐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한때 아파트 외래어 사용을 억제한 적도 있는데 한 부동산 정보조사 업체에 의하면 1979년은 평균 3자 이었으나 2019년의 아파트 명칭 글자수는 9.8자로 3배가 높았고 최장 이름은 서울의 “향동 중흥 에스 클래스 베로디 카운티”로 무려 15자 입니다.

또한 서울의 한 아파트에는 아델리치 (Addelich)라는 펫네임이 붙어 있는데 이는 스페인어 Adelio (고귀한), 독일어 Adel (귀족), 영어 cherish (소중이 하다)등 무려 3개국어가 합쳐진 명칭이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래어가 섞여있는것은 시부모가 못찾아 오도록 했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자식과 며느리들이 부모님들께서 마음 놓고 찾아 올수 있도록 부모님 생일을 비밀 번호로 각 가정이 통용하고 있다는 미담도 있습니다.

이렇게 주택 이야기를 하다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너나할것 없이 내집 마련의 꿈과 함께 옛날의 “셋방 살이”의 어려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1960년대 급격히 이농현상이 이루어 지면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였던 젊은이들은 삯월세, 월세, 전세등을 전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때의 집없는 서러움이 배고픈 서러움 만큼이나 컸던것을 그린 영화 “셋방살이” (1996년 개봉, 김승호, 황정순 주연)와 KBS드라마 “셋방 살이” (1975. 12~1976. 9간 방영, 박병호, 여운계 주연)의 인기가 셋방살이의 애환을 잘 대변해 주었습니다.

저도 농촌 초가집에서 태어나 새마을 운동 덕분에 기와집에서 자랐고 직장따라 서울에서 단칸방에 세들어 신혼생활을 하면서 셋방살이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는 1970년 중반에 전주로 전근가서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경험했고 1980년 초에 대전으로 와서 그리도 소망했던 내집을 마련했습니다.  그집에 살면서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도 하고 2층도 올려 서화, 책, 수석등을 진열 하였습니다.

그리고 담장에는 대추, 무화과, 석류, 가시오가피, 넝쿨장미, 사철 나무등을 심고 마당한켠에는 텃밭을 일구어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등을 가꾸었으며 그 곁에는 넓은 평상도 놓았고 한때는 한국 춘난도 기르고 진돗개도 키우면서 단독 주택의 편안함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에 재개발 지역으로 공사가 시작되어 난생 처음 달았던 문패만 떼어 가지고 인근 아파트로 이주하여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봄이 되면 각종 나무들이며 떨어진 씨가 저절로 싹을 내는 수세미, 해바라기, 호박이며 쑥, 돗나물, 부추, 낮달맞이 꽃등이 새싹을 낼것인데 공사로 인하여 시멘트에 파묻힐 것을 생각하면 올봄은 마음이 편치 않을것 같습니다. 

dok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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