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를 통해, 미국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NFL-National Football League)에서 한국계 선수이자 유능한 코치로 잘 알려진 정유진(Eugene Chung)씨가 올해 오프시즌( 4월19~ 6월18일) 트레이닝 코치 면접에서 퇴짜당한 이유가 공개되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보스턴 글로브지에서 공개한 정유진씨와 NFL 인터뷰 담당자의 대화를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 NFL 인터뷰 담당자: 정유진씨, 당신은 소수 인종이 아닙니다… (Well, you are really not a
minority)
· 정유진: 잠깐만요.. 조금전에 거울을 보고 확인했을때 저는 소수인종이 맞는데요. 제가 소수 인종이 아니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 (Wait a minute. The last time I checked, when I looked in the mirror and brushed my teeth, I was a minority)
· NFL 인터뷰 담당자: 당신은 저희가 찾고 있는 바로 그 소수 인종이 아닙니다. (You
are NOT the RIGHT minority we are looking for…
정유진씨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고 밝혔습니다.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해 보고자 담당자에게 “찾고 있는 소수 인종이 아니다”가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는데, 그때 담당자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유진씨는 2021년에 이런 인종 차별적인 일이 생길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설명하면서, NFL이 원하는 “소수 인종”에 아시안들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씁쓸한 감정을 숨길수 없었다고 보스턴 글로브지에 털어 놓았습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정유진씨 (아래 사진)는 NFL에서 꽤 알려진 유능한 선수이자 코치입니다. 1969년 생으로 버지니아 공대를 졸업하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여러 유명 프로 NFL팀 (Patriots, Jaguars, Colts)에서 공격태클 포지션을 맡아 활약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프로에 입문할때 (1992년) 아시안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제 1 라운드에서 드래프트 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는 모교인 버지니아 공대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선수생활 은퇴후, 2010 년부터 2019년까지 캔자스 시티(Chiefs)와 필라델피아(Eagels)에서 각각 공격 라인팀을 맡아 부코치로 활동했고, 특히 2017년 시즌에는 유명한 뉴 잉글랜드 (Patriots) 팀을 상대로 필라델피아 팀이 수퍼볼에서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이룩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고려해 볼때, 정유진씨가 오프시즌 코칭에서 단순히 그들이 찾는 “특정 소수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전에서 퇴짜를 당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직업 인터뷰에서 경력이나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 “인종”을 강조했을까요? NFL은 2003년 “루니 법(Rooney Rule)”이라는 소위 스포츠계 “소수 우대 정책 (Affirmative Action)”을 직업 인터뷰 과정에 도입했습니다. 이는 NFL팀 내에서 수석 코치나 매니저 직책등에 공석이 생길 경우, 모든팀들은 후보자들을 선정할때, 최소한 한명은 소수 인종이나 그룹(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여성등)에서 후보자를 선택해 인터뷰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2009년에는 NFL의 일반 사무, 운영 관리직 인원을 뽑을때도 이러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그 해당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이 규정은 “인터뷰 과정”에만 제한되며, 최종 합격자의 쿼타를 소수인종이나 그룹의 후보자가 채워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20년, NFL은 “소수인종/그룹” 후보를 최종 고용한 팀에게 추가 드래프트를 수여하는 보상(rewards)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유진씨의 폭로로 이런 NFL의 소수 우대 정책은 아시안들이 제외된, “특정” 소수 인종을 위한 정책임이 탄로나게 되었는데요. 아이러니한 점은 NFL내에서 선수나 수석코치의 인종별 구성 비율을 볼때, 아시안인들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소수 그룹이라는 점입니다. 2020년 The Institute for Diversity and Ethics in Sport (TIDES)가 발표한 데이타에 따르면, NFL내 총 선수들 중 흑인이 57.8%, 백인이 24.9%,히스패닉은 0.4% 그리고 아시안은 겨우 0.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래 도표 참조). 또한, NFL 수석 코치들 인종별 비율은 백인이 87%, 흑인이 9.4%, 히스패닉은 3.1% 그리고 놀랍게도 아시안은 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NFL이 대외적으로 인종별 다양성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Rooney Rule”에 따르면, 아시안들이 당연히 우선적으로 고용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정유진씨는 그들이 바라는 “특정” 소수 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규 시즌도 아닌 오프시즌 코칭 포지션에서 퇴짜를 맞았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그 “특정” 소수 인종은 누구일까요?
아시안들은 1960년대 소위 “모범적 소수 인종”으로 집단화 되어 미국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관념은 아시안들이 열심히 일하고, 교육열과 수준이 높고, 또 법을 준수하는 선천적 본능을 가진 덕분에 미국내 다른 소수 인종들보다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런 고정관념으로 인해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아시안 소수 인종들은 미국 정부에서 행하는 소수 인종을 위한 여러 복지 정책에서 제외되어 왔습니다.
특히, 현재 교육,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공평(Equity)”과 “다양성(Diversity)”을 강조하는 개혁 정책에서 아시안들은 “혜택받고 성공적”인 인종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짜뉴스의 “교육 시리즈”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사들을 보시면, 다른 소수 인종보다 성적이 월등하다는 이유로 아시안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성적 우수반”들이 취소되고 있고, “공평”을 강조하는 대입 전형 개혁에서도 표준 대입 고사(SAT, ACT등)의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학생들은 다른 소수 인종들에게 합격 자리를 내주는 안타까운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짜뉴스 “교육 시리즈” 링크 참조-기사 하단에 첨부).
정유진씨의 용기있는 고발로 5월 24일 결국 NFL에서 내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는데요. 정유진씨는 보스턴 글로브지에서 고발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는 한국 아시안계 미국인이라는 저의 문화적 정체성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저는 NFL 전체를 비방하고자 이런 고발을 한것이 아닙니다. NFL에는 다양함을 포용하는 많은 위대한 스승들과 코치들이 있습니다. 제가 인터뷰 중 겪은 부당한 대우를 밝힘으로써 NFL이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입니다.”